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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보는 우리 수학 = LastModified : 020613

”'(김영욱) 대학에서 보는 우리 수학 (수학사랑 1999년) ”’ (이 글은 1999년도 수학사랑 마지막 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수학사랑에는 이 글을 조금 줄여 편집된 내용으로 실렸습니다.)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수학과

교수 김영욱(金英郁)

19991015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은 무한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리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공부를 마치고 보면, 자신이 공부한 것을 쓸 곳을 찾기 힘들고, 운이 좋은 경우에도 주위의 무지와 잘못된 정책과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다. 선진국의 훌륭한 예를 많이 보면서, 또 우리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나라들도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만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전쟁후 살기 힘들던 때를 생각하며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은 우리가 태어난 5, 60년대와는 다르다. 또 우리가 공부하던 7, 80년대와도 다르다. 지금은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때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모두 다 알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경험하는 왜곡된 교육현실과 근시안적인 대학교육 정책, 늘어나는 기초과학 경시풍조는 모두 수학을,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별다른 뾰족한 수를 대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문제를 바로 바라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는 생각해보려고 한다.

수학은 어떤 학문인가

수학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어떤 유명한 수학자가 최근에 “진정 수학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썼다. 책 한 권이 필요하다면 분명히 어려운 물음이다. 우리는 이 물음을 음미해 보면서 수학이 보여주는 여러 양상을 보려고 한다. 수학을 가르치면서 보면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공식을 배우고 기억하려고 할 뿐, 그 유도 과정이나 이론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것을 보고 열심히 이론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차츰 수학을 왜 배우는가, 수학은 무엇하자는 것인가를 묻게되면, 생각나는 것은 우리도 처음 수학을 배울 때는 공식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부터 배웠다는 것이다. 물론 이론도 배우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론의 쓸모는 잘 몰랐다.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인 것 같이 생각된다.

공식 때문에 수학을 다시 바라보고 역설적으로 알아낸 것은 수학은 공식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단지 중·고등학교 수학에만 공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접하는 현상에서 공통적인 형식을 뽑아서 공식처럼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수학은 결국 현상의 틀을 공식화하여 기억하기 쉽고 적용하기 쉽게 하자는 것일 뿐이 아닌가? 그렇다면 공식을 외우겠다는 것이 크게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수학 이론을 배우고 공식을 익힐 때쯤 되면 그냥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는 이론과 공식을 유기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욱이, 유기적 관계를 이해하면 공부한 것을 훨씬 더 폭넓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수준이 되면 유기적 관계라는 공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것을 보통은 외우지 않고 이해한다고 말한다.

수학을 쓰는 단계

수학을 공부하며 보면 수학에 단계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정말로 단순한 공식을 기억하고 쓴다. 그러나 단계가 올라가면 하나의 공식은 이전 단계의 여러 공식을 유기적으로 모아서 한꺼번에 서술한 것처럼 보인다. 이 것은 그 다음 단계에서도 또 마찬가지이다. 처음의 한 두 단계는 모든 사람들이 중·고등학교까지 공부하며 경험하여 알고 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이러한 단계가 있으며 대학에서의 수학 교육은 이에 맞추어 새로운 방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일반 사람들이 대부분 잘 모르고 있다.

한 사람을 교육할 때에는 교육의 목표를 정하여야 한다. 이 사람을 어떤 사람이 되도록 교육할 것인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수학정도를 사용하는 일상적 업무를 다룰 사람인가? 고등학교나 대학 초반의 수학 정도까지를 쓸 수 있어야 하는 기능화된 단순수치작업으로 만족할 사람인가? 아니면 대학에서 공부하는 여러 가지 수학적 모형을 이해하고 다루며 스스로 모형을 바꾸고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할 사람인가? 또는 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그 가운데에도 한 두 분야에 정통한 수학의 연구자를 만들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가 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방법과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전문적인 수학자나, 다양한 모형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응용수학자 및 준 수학자들의 필요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매스컴 등 여러 곳에서 들어 익히 알 수 있지만, 금융 분야나 정보 보안 분야와 같이 최근에 갑자기 중요하게 된 분야나 영상 분야나 정보 자료분야와 같이 꾸준히 연구되던 분야에서 근래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수학의 기법을 쓸 수 있고 또 개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어떤 분야들은 국가 안보와도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이나 발전이 결정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달려 있게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도 수학 전문가(technician)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길 때가 된 것이다. 수학의 앞날은 밝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역동적이라고 하겠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수학의 상황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우리는 근본적으로 선진국들로부터 과학과 기술을 배워오는 방법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지적인 경쟁시대에는 현장에 맞는 기술을 배우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이 최첨단 기초과학의 연구와 직결되는 일이 잦아짐에 따라, 수학과 같은 기초 학문의 연구가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 나라의 수학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는가? 대략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진국에서 공부한 우수한 수학자들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음에 따라 수학의 일선은 미흡하나마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이 잘 하고 있는 것은 선전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국가적 차원의 필요에는 부응할 수 없다.

몇 가지 비교를 해 보자.

어떤 나라에서 학문의 성숙도를 알고싶다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학자의 수이다. 우리와 그런 대로 유사점이 많은 일본을 보자. 1970년도에 일본수학회의 회원은 2,92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인이 기억하는 대한수학회 회원의 수는 1975년도에 200명 정도였다. 물론 당시의 경제적 여건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97년도 일본수학회 회원수는 정회원만 5천명이 넘는다. 대한수학회 회원은 겨우 천명 정도이다. 일본 인구가 우리의 두 세배가 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비례적으로만 우리의 두 배는 된다. 수학회의 회원수가 갖는 의미는 그 사회에서 수학에 직접적 관심을 갖는 사람의 수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수학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기초과학에도 관심이 없다.) 이는 국민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수학에 관심이 있고 없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가 정책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미국의 보편적 대규모 대학이라면 보통 주립대학들로 학부 학생수가 30,000명 가까이 되고 교수수는 2∼3천명 정도인 학교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유수한 대학의 일년 총 예산은 1980년대 말에 10억 달러 수준을 넘어 있었다. 이 수치는 아마도 당시 고려대학교 1년 총 예산의 10배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1988년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일년 예산은 4억 달러에 육박한다. 지난해 고려대학교 예산은 10년 전의 두 배가 조금 넘는 2,3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외국 대학의 예산도 그에 걸맞게 늘었을 것이다.

예산이 두 배라면 학교도 두 배정도 좋은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작년 고려대학교 예산에서 인건비만 따로 보아도 약 40%에 달한다. 총 예산이 10배인 미국 대학에서 교직원 일인당 인건비는 우리 나라에서보다 10배씩이나 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교직원의 수에 비례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제외하고 나서 실제로 설비나 도서, 기자재 등의 기본적시설(infrastructure)에 장기 투자되는 부분만을 비교하면 10배가 아니라 수십배의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가 수십년씩 쌓인 결과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근본적 차이를 야기한다. 결국 선진국에서는 그 나라 어디서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우리 나라 안에서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거나 혹시 있어도 전국에 한 두 군데뿐인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선진 국가들이 학문의 발전을 이룩한 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오랜 동안에 걸쳐 발전해온 것이므로 접어두고, 20세기에 들어서며 급격히 발전한 미국과 일본을 보자. 미국은 제 1, 2차 세계 대전을 지나며 유럽의 많은 과학자들은 유치하였다. 이에는 새로 발전하고 자유로운 나라라는 이미지도 한 몫을 하였겠지만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진취적인 안목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일본은 더욱 뛰어난지도 모른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일본은 당시 가장 발전된 나라인 독일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학자들을 장기간 유치하여 스스로도 선진 수학 이론을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발전시켰다. 이 수학자들은 단기간씩 방문한 것이 아니라, 몇 년씩 걸쳐서, 전적으로 일본에서, 학자를 양성하였다. 우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하여 논의하기 전에 우선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학교 재정과 재원 확보의 문제는 나중 이야기이고, 수학자의 수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하자.(편의상 수학회 회원의 수를 그 기준으로 이야기하자.) 앞에서 말했듯이 지난 25년간 우리 나라에서 약 800명 정도의 회원이 증가했다면, 지금은 수학과 졸업생의 수가 조금 증가하였으므로, 사회적 여건의 변화가 없다면 다음 20년 동안에 천 여명의 회원이 늘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 것은 최근에 수학과 같은 순수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감안하지 않고서 예상한 것이다. 이 경우 2020년 정도에 가서 겨우 인구 대비로 현재 일본 정도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을 따라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런 식이라면 10년도 가기 전에 확실한 낙오 국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이에 반하여 세계 수학계는 연구면에서 최근 10년 동안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뚜렷한 특징을 몇 가지 볼 수 있는데, 우선 양적인 발전이다. 발표되는 논문의 수를 보면 근래의 1∼2년에 발표되는 수는 7∼80년대의 10년 동안 발표되던 논문의 수를 능가하는 것 같다. 가히 폭발적이다. 수학의 쓸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수학자의 수가 늘고 있으며, 연구의 기법이 발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 째 특징은 수학의 여러 분야들이 통합되는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서로 분리되어 상호 교류 없이 연구되던 수학 분야들이 연구 방법론들을 서로 바꾸어 적용함으로써 빠른 발전을 이루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하학과 위상수학이 서로를 연구하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며, 이제는 해석학과 기하학이 융합되고, 수학 여러 분야에 대수학과 확률론의 방법이 섞여들었으며, 위상수학과 해석학이 다시 합쳐지는 등, 이미 수학의 분야를 옛날처럼 분류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 추세는 수학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벌써부터 이론 물리학분야에서는 물리학자와 수학자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다.

또 한가지 특징은 응용수학에 있다. 10여년 전만 하여도 응용수학이라고 하는 분야는 거의 수치해석학만을 지칭할 정도로 컴퓨터를 사용한 계산문제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수학의 전 분야가 응용수학이라고 할 정도로 범위가 넓어졌으며, 그 적용 대상도 물리학과 공학의 몇몇 분야였던 것이 지금은 이·공학 전반은 물론 인문 및 사회 과학의 방법론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이 말은 수학이 응용수학자를 통하여 타 분야에 응용되던 예전의 방식에서, 보통 수학자들에 의해 현장에서 직접 응용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수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산되어야 함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보면, 우리는 지금 세계와 견주어 우리 수학의 퇴보를 논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의 절대적인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산업체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게임이 안되는 때인 것이다.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앞에서 생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수학의 교육과 연구에 어떤 효율적 투자를 하여야 하는가? 논의는 많다.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하여도 그렇고, 초·중·고등학교의 여건을 위하여도 그렇다. 또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개인적인 성취를 위하여도 훌륭한 방법이 되도록 사회적 여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것은 이 일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해야만 될 수 있는 일이며,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심각함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논의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하여 그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또 획기적인 새로운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보통 수학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 목표로 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수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이는 단순히 수학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단순한 기능적 수학을 익힌 사람들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능동적으로 방법을 개발하며 수학을 쓰는 사람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것과 이런 수학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매스컴을 통한 노력들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어느 한 두 사람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하여야하는 일인 것이다.

한편, 중·고등학교의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문제를 잘 풀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문제를 잘 풀게 교육받아도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다. 문제가 나쁘기 때문은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생각하지 않도록 배우는 결과이다. 빠른 시간에 많은 문제를 실수 없이 푸는 것은 여러 가능성과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새 시대에 필요한 것만 꼭 빼 놓고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대학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물론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학 시험을 무시하고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소를 위해 대를 잃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학시험과 관련하여 이 문제는 깊이있게 그리고 다양하게 연구할 문제이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대학에도 있다. 산업체에서 대학 졸업생을 뽑으며 원하는 것은 현장의 문제, 눈앞의 문제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에서 수 십년간 일해 나갈 사람은 눈앞의 도구만 익힌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생각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키워야 하고,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현대 수학의 발전된 연구 방법의 하나는 수학자들이 토론을 통하여 생각을 교환하고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팀을 이루어 개개인의 사고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에 익숙하도록 만들려는 교육은 어려서 시작할수록 좋다. 특히 창의적 사고력은 다양한 경험에서부터 나온다고 본다. 이를 위하여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의 하나는, 보통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사고 경험이라고 생각된다. 즉 현실 문제와 관련하여 수학적 공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또 이론을 공식으로 외우는 것을 지양하고, 오히려 주어진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생각해보는 방법도 좋아 보인다. 반례를 통해 이론을 익히는 방법은 예와 증명을 통해 익히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

가르칠 때 무엇을 하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나쁘다고 듣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에서 수학(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수학이란 학문은 발전에 들인 노력에 대한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는 학문이다. 이런 학문이 자라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중도에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특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꾸준히 변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커다란 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어야만 한다. 정책이 조금 못해도 꾸준히만 하면 그 효과는 충분할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정책과 제도하에서도 훌륭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은 입학 시험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볼 수 있다. 완벽한 입학시험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세우더라도 기본 골격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자주 바꾸는 것은 그에 따라 변화하는 일선의 교육 방침이 뿌리를 내릴 틈이 없다는 점에서 최악이다.

또 하나는 다양성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 개개인에 따른 학습내용과 시간의 다양성이나, 학교들 사이의 교육 방침과 내용의 다양성이나, 또는 여러 정책과 계획에서의 다양성 등을 될 수 있는 대로 살리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다. 다양성이 없는 것은 발전할 수 없다. 변화의 여지가 없으면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나, 어떤 대학에 투자를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이 그 밖의 분야나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정도가 되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된다. 다양성으로부터 생기는 경쟁과 역동적 변화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밖에서 공부하는 것을 막지는 말아야한다. 특히 과외 학습의 경우이다. 오늘날 보는 과외와 학원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며, 또 과열 과외는 사회적으로도 정말 큰 문제이지만, 이 문제는 어렵더라도 새로운 쪽으로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여야한다. 하기 편하다고 해서 공부에 관한 다른 길을 전부 막는 것은 원칙적으로 또 하나의 다양성을 잃는 길일뿐이기 때문이다.

1999년에 바라보는 우리의 교육문제는 암울하게 보이는 한편 희망이 느껴지기도 하는 매우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에는 많은 요인들이 꼬리를 물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를 물고 돌고 돌아 결국은 어느 한가지도 꼬집어 말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굳이 든다면 20세기 말에 들어 급격히 가속화된 변화의 물결을 따라잡지 못하는 우리 전부의 무능력정도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려는 일의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보살피고 돕는 것뿐이 아닐까? 과욕은 항상 부작용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하여야 할 것도 사람들이 바른 인식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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