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이 중국 수학에 미친 영향
유학은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사상이다. 유학은 이 혼란의 원인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이 무너진 것에 있다고 보고 “예”로써 이를 다시 세워 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유학이 중국 학문에 미친 영향은 기독교가 중세 서양 학문에 미친 그것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기독교가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을 가지고 인간 이성 활동을 억제했다면 유학은 위와 아래 사이에 존재하는 예를 가지고 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다. 유학의 핵심인 “수기치인”의 정신이 이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먼저 자신을 예로써 점검하는 수기의 행위는 적지 않은 창조적인 생각들을 감히 해서는 안될 일로 치부했을 것이다.
또한, 서양 학문이 기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근대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반면 근대까지 유학이 주 사상이 된 중국은 그러지 못한 사실은 학문의 발전적 측면에서 볼 때, 기독교와 유학이 동일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보이는 간접적인 증거일 것이다.
따라서 중국 수학은 순수한 면을 잃고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 즉 다시 말해, 중국 수학자에게는 자신에게 맡겨진 현실적 문제(주로, 역술)를 해결하는 것이 타고난 예에 합하여 군자가 되는 일이 었고 존재에 대해서는 묻는 고상한 시도는 자신의 지위를 망각한 소인배의 일이었다.
참고문헌
- “철학, 역사를 만나다”, p51, 안광복, 웅진 지식하우스
- 위키피디아 한국,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A%B5%90
2.추론한 성격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사례
- 산대
산대는 중국 수학자들이 이용한 계산 도구이다. 명나라 시기까지도 사용되었는데 송원 시대에는 산대 계산 안에 쓰이는 숫자들이 기록을 위한 표기 숫자의 역활까지 하게된다.
계산 도구인 산대의 이러한 유행은 중국 수학이 계산법을 연구하는데 특히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 까? 실제로 송원 시대에 출판된 책들은 중국 수학이 입방과 석쇄 부분(둘 모두 계산법이라 볼 수 있음)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수는 계산 과정에서 잠시 등장하는 조연이었을 것이다. 산학자가 펼쳤던 산판을 거두어 들이면 사라지고 마는.
- 관료 수학자
중국 수학자들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라가 기용한 관리들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주관심은 문제 해결 즉, 임무 완수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본 수학책들의 내용이 그 당시의 현실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참고문헌
- 산대셈과 수판셈 중 산대의 역사 부분, 허민, 한국수학사학회지 제18권 제1호, 49-66
- http://en.wikipedia.org/wiki/The_Nine_Chapters_on_the_Mathematical_Art#Table_of_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