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은 2006년도에 교수신문에서 당시 수강 학생 가운데 하나였던 법학과 김문정군에게 부탁하여 강의소개 칼럼의 글을 쓴 것입니다. 강의 중간에 쓴 글이라 일부분에 치우친 점이 있지만 혹시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들이 강의의 방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여기에 올려 놓습니다.
우리대학명강의: 김영욱 고려대 교수의 `18~20세기 수학’
이 제목은 교수신문의 칼럼 제목이므로 신경쓸 것이 못 됨.
수학에 대한 철학적 토론…탑 쌓고 또 무너뜨리기
= 법학과 김문정 군이 쓴 18~20세기 수학 강의 소개 =
2006년 04월 26일 김문정
지금 제가 듣고 있는 김영욱 교수님의 수업은 ‘18~20세기 수학’으로 정량적 사고를 기르기 위한 교양의 하나로서 개설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수학이 어떠한 물음과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며, 그 밑에 깔려있는 사고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수학적 지식의 확충이 아닌 수학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하여 이 수업에 필요한 능력으로서 고등학교 수준의 미분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사전에 기준으로 두셨습니다. 강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우선 각 세기별로 수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강의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노트를 통해 예컨대, 연속성, 넓이, 쌍대성 등과 같은 중요한 토픽들을 살펴봅니다.
- 수학지식 확충이 아닌 사고력 높이는 수업
마지막으로 조별 발표가 있습니다. 발표에서는 단순히 유명한 수학자가 일구어낸 학문적 업적에 대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왜 그런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조원들의 생각을 전달합니다.
조별 발표의 준비는 ‘WIKI’라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WIKI’는 운영자, 방문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글을 쓰거나 수정할 수 있는 웹 사이트입니다. 하나의 페이지에서 텍스트가 진화할 수 있기 때문에 토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최적화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WIKI’안의 링크를 통해 강의에 필요한 노트나 참고 자료의 제공, 교수님께의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주된 수업 방식은 토론입니다. 토론이란 방식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 매끄러운 진행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 방법은 학습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토론은 어떠한 답을 구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사고를 다듬어 가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져주십니다. 예컨대, 현실에서의 불연속의 예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 우리는 불연속의 반대인 연속뿐만이 아니라 연속을 인식하는 현실 속 메커니즘 등에 대한 질문에까지 생각해봐야합니다. 즉, 하면 할수록 근본이 되는 질문을 가지게 되고 그것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해가는 과정 속에서 생각은 정교해집니다. 또 연장선상에서 문제도 풀이보다는 증명 위주로 수업하십니다. 문제의 풀이를 하시더라도 답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이 모두는 학생이 능동적인 자세로 참여를 하도록 만듭니다.
이 수업의 가장 큰 매력은 교수님께서 던져주시는 물음들이 기존의 사고체계를 검토하게 해주신다는 점입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사고 체계는 오류가 없는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수학과 같이 연역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학문에서는 전제나 근거의 진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교수님은 바로 그 기존 생각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십니다. 마치 데카르트가 완벽한 사고를 하기 위하여 확립했던 사고의 제1전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생각한 것처럼 말이죠.
갖고 있던 생각을 차근차근 쌓아 탑을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교수님의 물음은 탑을 흔들거나 무너뜨려 다시 처음부터 그렇지만 더 튼튼하게 탑을 쌓는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강의는 마치 다시 초등학생이 되어 수학을 처음부터 배우는 듯한 느낌조차 듭니다. 실제로 넓이에 대한 강의에서는 초등학교 교과 내용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 고등학교 정적분 내용까지 살펴보기도 하였습니다.
- 초등학교 교과내용까지 다시 배워
이처럼 수학에 대한 이해는 가정들에 대한 검토나 그 근거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깊어집니다. 지금까지 명백한 사실이라고 생각해 왔던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해봄으로써 그 사실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 강의는 그 소재와 형식을 수학에서 취할 뿐, 그 내용은 철학 강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보와 구조에 대한 수업에서는 링크, 공리적 방법론 등 인식론의 문제까지 다루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통한 훈련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까지는 답이 있는 수학만을 대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이런 수업은 사고를 한 차원 높여줍니다.
그리고 교수님은 끊임없는 질문은 사고의 순발력을 기르게 해주십니다. 물음 특성상 물음들이 꼬리지어 계속 나오기 때문에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의 목적은 상대방의 생각과 내 생각의 차이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드는 데에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토론에서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시간은 매우 부족합니다. 따라서 사고의 순발력은 토론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키워집니다. 나아가 추상적인 수학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수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십니다. 현실에서의 많은 예를 관찰하게 하시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수학적 시각에서 접근 능력을 길러줍니다.
김문정/고려대 2학년·법학과
교수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