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간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마지막으로 올린 글 “변명”에 답글 게재 신청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응? 답글을 달지 못하게 해 둔 것 같은데 어떻게 답글이 올라왔지? 답글을 달지 못하게 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학교에서 요구하는 보안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위 답글은 나타나게 했는데 답글을 달도록 해도 되는지 학교에 문의해서 안 된다고 하면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답글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관리의 문제도 있다. 놀랍게도 위 답글을 보이게 한 순간 순식간에 러시아 어로 되어 있는 답글 세 개가 게재 신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답글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내용에 의하면 내 홈페이지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80억 중 한두 명보다는 많은가 보다. 며칠 전 한 이메일을 받았는데, 내 전공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서 뜬금없이 정년이 언제신가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이 답해주었는데 오늘 “변명”을 다시 읽어 보니 “변명”에 정년이 몇 년 안 남았다고 적어둔 걸 보고 그런 궁금증을 가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그 질문에 대한 대한 답은 이미 내 홈페이지 어느 한 구석에 나와 있다 🙂 )
그런데 두 번째 답글의 마지막에 질문이 있더라. 쉬는 동안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오랜만에 홈페이지에 글도 올릴 겸 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 내용을 쓴다.
요즘 스핀 기하를 들여다 보고 있다.
물리학에 스핀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들어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였다. 물리 선생님인가 교감 선생님께서 서울 모 유명학원에서 가르치는 교재라고 하시면서 물리책을 한 권 주셨는데 그 말미에 주양자수, 부양자수, 자기양자수, 스핀양자수라는 게 있었다. 네모 칸에다가 위로 향하는 화살표, 아래로 향하는 화살표 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연히 그게 뭔지는 모르고 나오는 내용을 무조건 달달 외웠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스핀이 그 어려운 양자역학적 개념이고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게 한 업적들이라는 걸 알고 살짝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그런 어려운 이론을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내가 몰랐던 게 당연한 거였구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스핀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치여 살면서 언젠가 기회가 오면 잘 들여다 봐야지 하고 흘려보내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유튜브에서 “Electrons do not spin”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게재 일주일 밖에 안 된 영상의 시청 수가 6백만이 넘어서 깜짝 놀랐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스핀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PBS 방송이라서 이런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3.4M 시청… 응? 이상하다. 내 기억에 첫 일주일 동안에 6백만 시청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기억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그 영상의 처음에 나오는 말이 이것이다. “이상한 양자 현상들이 많은데 그 중 아무도 모른다고 모든 이들이 다 동의하는 게 있다. 바로 양자 스핀이다.” 아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서 과장한 거겠지, 설마 아무도 모르겠는가?
양자현상으로서의 스핀은 여전히 내게 신비의 대상이지만 수학적 대상으로서의 스핀에 대해서는 다행히 이번 연구학기 동안에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히 들여다 보던 2×2 복소행렬공간을 이용한 기하를 통해서 아주 약간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대학원생 시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등식에 질려 공간은 조금 더 복잡하고 계산은 조금 덜 해도 되는 그런 기하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이 기하가 딱 그렇다.
고등학생 때 스핀이란 뭘 말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후로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스핀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냐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 때 그 수준에서 겨우 몇 발자국 나아간 정도? 겸손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렇다.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젊을 때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