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를 배웅하러 용산역에 갔다가 들른 영풍문고에서 고 이어령 선생님의 ‘너 누구니’란 책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 너는 젓가락이다. 순간 떠오르는 젓가락질에 대한 조금 황당했던 기억.
첫째, 둘째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젓가락질을 엉성하게 하길래 이건 아버지로서 바로 잡아주어야지 하고 밥 먹을 때마다 조금 엄하게 젓가락질을 잘 하라고 다구쳤다. 한두 달 정도 지적을 계속하여 그나마 둘째가 내가 가르치는 대로 젓가락질을 하게 되어 ‘음, 아버지로서 하나 가르쳐주었구나’ 흐뭇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젓가락을 쓰는지 말이다. 그래서 구내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이 젓가락 쓰는 법을 관찰해 보았는데, 어?, 이상하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이 젓가락을 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으잉? 하면서 그 후로도 계속 사람들이 젓가락을 쓰는 것을 관찰해 보았는데 여전히 나와 같이 젓가락을 쓰는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허어, 하면서 이번에는 어느 학회에서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베트남 사람 등과 같이 식사하게 된 자리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젓가락 쓰는 법을 살펴 보았는데 아무도 나와 같이 젓가락을 쓰지 않더라. 나는 세 손가락만을 써서 젓가락을 쓰는데 내가 관찰한 모든 사람들이 네 손가락을 쓰는 것이었다. 거 참 이상하다 싶어 이번에는 고향에 가서 어머니께서 젓가락 쓰시는 걸 살펴보았는데, 이럴 수가, 어머니마저도 네 손가락을 쓰시는 것이었다. 분명히 어렸을 때 누군가로부터 꾸지람 들으며 젓가락 쓰는 법을 배워 세 손가락만을 쓰게 됐는데 도대체 누구에게서 야단 맞으면서 이렇게 젓가락을 쓰게 됐단 말인가? 어쨌거나,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아들아, 참 이상하다. 아버지는 분명히 세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쓰라고 배웠는데 두 달 정도 아무리 찾아도 아버지와 같이 젓가락 쓰는 사람이 없구나. 미안하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우연히 나랑 같은 방식으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 생일 선물로 사 준 허영만의 각시탈이란 만화에서 주인공이 생각에 잠겨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그림인데 딱 내가 쓰는 그 방식으로 세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써서 밥을 먹는 것이었다. 2011년 8월 29일 발행된 한국만화걸작선 각시탈의 102쪽에 그 그림이 있다. 당장 그 만화를 들고 아이들을 불러 ‘봐라,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세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사용했던 것 같다.’라고 큰 소리로 변명을 했다. 그렇게 나의 젓가락질 교육은 막을 내렸다.
고 이어령 선생님은 젓가락질을 어떻게 한다고 써 넣으셨을까? 궁금해서 책은 샀는데 언제 읽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