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올해 고연전은 매우 짜릿했다. 첫날 목동 경기장에서 펼쳐진 야구, 빙구에 연달아 패하여 이거 잘못하면 0:3으로 첫날 이미 승부가 결정되는 것 아냐?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농구를 보러 고양으로 갔다. 길이 막혀 한 20분 정도 늦게 입장하였는데, 야, 농구는 10점 정도의 차이로 이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농구는 이기겠구나 안심된 마음으로 보는데, 조금 있으니 밀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역전되어 버렸다. 어어 하면서 이거 이러다가 정말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되는 것 아냐? 마음을 졸였는데 결국은 재역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휴. 둘째날은 제 2회 Next Intelligence Forum <생명과학대학 70주년 기념> 참여 관계로 경기장에 가지 못했는데 럭비는 이겼다는 건 전해 들었고 축구는 마지막 10분인가를 유튜브로 보면서 두 번째 골, 세 번째 골 들어가는 것을 모두 보았다.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귀청이 얼얼하도록 울려 퍼지는 그 승리의 함성을 언제 또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나중에 들으니 0:2에서 3:2로 역전하여 종합우승한 건 고연전 역사상 역대 두 번째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고연전을 보면서 작년에 처음으로 관전한 연고전(고려대가 주최하면 연고전이라고 부름) 럭비 경기의 한 장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경기 거의 마지막 부분에 고려대 선수 8명인가가 둥글게 스크럼을 짜고 한발한발 터치라인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연세대 선수들이 정면에서 막아도 보고 옆에서 흔들어도 보면서 어찌해 보려고 애썼지만 꿈쩍하지 않고 한걸음씩 나가더니 결국 터치라인을 밟는 것이었다. 그 힘, 아무런 기교도 없이 오직 힘으로 밀어붙이는 그 우직함. 그 장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부분의 일에는 많은 기교가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하고. 공부를 잘 하려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그 기교라고 하는 것이 도움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 우직한 모습에 나는 찬사를 보낸다. 사실 우직함은 가장 믿음이 가는 기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수험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나도 한 마디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방법론에 대하여 고민하는 걸 멈추고 일단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이미 수천년 전에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기본에 충실하는 것, 원칙을 따라가는 것. 말은 쉽지만 사실 실행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미 내 마음 속에 ‘요렇게 조금만 바꾸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저렇게 조금만 손보면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 오른다. 사실 우리 문명의 발전은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 혁신의 노력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목소리 앞에 ‘그냥 이대로 가자’는 말을 하기는 참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현 상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모든 일에 혁신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며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그대로 있으려고 해도 결국은 조금씩 변해가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용하게 되니 너무 억지로 바꾸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바꾸려고 할 때 새로운 것이 정말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고치고 보자는 생각을 나는 경계한다. 그렇지만 고쳐야 한다면 그 때는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여러 명이 스크럼을 짜 상대방의 제지에도 힘있게 한 발자국씩 전진하는 그 모습, 기교에 의지하지 않고 체력을 바탕으로 우직하게 한발한발 나아가는 그러한 모습이 기초과학의 연구에도 통용되기를 바란다.